
시편 53:1-6 / 요한복음 9:1-7
청소년기 저의 고민은 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는 게 청년 시절부터 제 인생의 화두였습니다. 철학과 신학을 알지 못했던 청소년 시기에는 신의 존재 증명을 찾아서 헤매기 보다는“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실천적 문제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사고로는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데, 그러면 죽기 위해서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젊은 시절에 죽으나, 나이 먹어서 50년 후에 죽으나 뭐가 다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이 고민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의 존재를 묻는 고뇌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신이라는 단어를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 “최고의 관심”이라는 말로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최고의 관심이 있습니다. 폴 틸리히는 그 최고의 관심이 그 사람에게는 곧 신이라고 보자는 겁니다. 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서, 무엇이 신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질문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최고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상, 학문, 돈, 권력, 출세 등에 최고의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영적 존재에 최고의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최고의 관심이 자신의 신이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사람들은 신을 가진 유신론자들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신으로 알고 살아왔고, 지금 무엇을 신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청년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나는 무엇에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는 무엇을 신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직장을 은퇴하고 노년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생각해 보세요. 나는 무엇을 신으로 알고 지금까지 살아 왔는가 하는 질문을 해 보세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신이신 예수님이 살아야 할 이유를 대답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남에게 신세만 지면서 살아야 하는 장님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서도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다고 대답합니다. 장님으로 태어난 이 사람도 이 땅에 대단히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장님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를 주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날 때부터 장님이라도 하나님은 책임, 사명을 주어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 장님도, 이 땅에 없어서는 안 될 대단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저 자신이 대단히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장님보다는 그래도 신체적 조건이 유리하지 않은가? 이렇게 건강하게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나에게도 하나님이 책임, 사명, 살아야 하는 이유를 주셨음을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나도 이 땅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한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고, 우리 자신이 참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스스로 아파서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과 이 장님과의 대화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그 어떤 비참한 경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장님인 사람보다는 삶의 환경이 훨씬 좋습니다. 장님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리도 살아야 이유가 있습니다. 장님도 이 땅에 쓸모 있는 귀중한 존재라면 저와 여러분도 이 땅에 대단히 쓸모 있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으로 믿고 있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으로 고백한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쓸모 있는 존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땅에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살아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함부로 남의 형편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 땅에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다 살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은 삶은 너무도 소중하고, 저와 여러분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존귀한 생명입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저와 여러분, 특히 우리 청년들은 살아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여러분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일생 동안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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