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팔복의 네 번째 시간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의(義)’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의’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개인의 구원을 넘어 공동체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통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의로움’이라고 하면 사도 바울이 강조한 법정적 의미의 의, 즉 죄인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만을 떠올립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이 법정적 선언은 우리 신앙의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걸어가야 할 제자의 삶을 놓치기 쉽습니다. 참된 의로움은 하나님과 새롭게 맺어진 관계 안에서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관계적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 본문이 말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이란, 구원받은 성도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 땅에서 온전히 살아내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를 보면 이 ‘의’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창세기 18장 19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의와 정의가 바로 마태복음이 강조하는 ‘의’의 구약적 배경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이 공의와 정의가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소는 성문 앞 광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하는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에도 저울추를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거나, 힘 있는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때 재판관이 단순히 판결을 내리는 것을 넘어, 약한 자가 부당한 문제를 제기하고 증거를 수집하여 시시비비를 가려 공동체의 평화를 회복하는 모든 과정 전체를 성경은 ‘공의와 정의’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은 개인의 경건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 그리고 전 세계 가운데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을 단번에 바꿀 힘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임하기를 눈물로 기도하며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의로운 삶의 모습은 ‘타인의 죄를 나의 죄로 받아들이는 참여’에 있습니다. 세상의 악함과 전쟁의 비극을 보며 타인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바로 내 안에도 있음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합니다. 영성가 토마스 머튼이 강조했듯이, 진정한 세계 평화는 우리 내면의 변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의 죄와 갈등을 나의 십자가로 짊어지고 주님 앞에 엎드려 스스로를 갱신해 나가는 사람, 그들이 바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지 않아도 될 짐을 스스로 지고 가는 이들을 미련하다 하겠지만, 주님은 바로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갈망해야 할 의는 단순히 도덕적인 결백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무너진 공의를 가슴 아파하고, 내 안의 욕망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삶입니다. 비판보다는 참회를, 방관보다는 간절한 기도를 선택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향해 묵묵히 걸어갑시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삼고 스스로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내면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에 참된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채우심과 위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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