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타고난 성품이 부드럽고 화를 내지 않으며, 늘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온유는 단순히 인간적인 기질이나 감정 조절 능력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그 내면에 부정적이고 거친 감정을 숨기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적 폭력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유순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기 자랑이나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판단과 비판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으며, 단지 그것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거나 표현에 서툴러 온유하게 보일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구약의 모세와 신약의 예수님을 온유의 대표적 인물로 제시하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민수기는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크다 라고 하지만, 모세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돌판을 던져 깨뜨릴 만큼 격렬한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으나, 성전을 장사의 소굴로 만든 자들을 향해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성경적 온유가 감정의 부재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참된 온유의 의미는 헬라어 ‘프라에이스’와 히브리어 ‘아나우’라는 단어 속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는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도리어 ‘무력함’을 유지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충분한 힘과 저항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스스로 그 힘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방법만을 따르는 ‘길들여진 힘’ 혹은 ‘자발적 무력함’이 온유의 본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능력이 있으셨으나,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심으로 온유함의 완성을 보여주신 것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온유는 인간 스스로의 훈련이나 성격 개조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온유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을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이유 없는 사랑’과 ‘온유함’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비참함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나를 힘들게 하는 이들을 향해 당장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참고 품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과 함께 빚어지는 온유입니다. 세상은 힘 있는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가르치며 힘의 원리에 지배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복을 선포하십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땅은 인간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것이며,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의 원리처럼 하나님께서는 무력함으로 인내한 자들에게 잃어버린 권리를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비록 이 땅에서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온유함을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미래의 삶과 자손들의 삶 속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부활의 생명으로 반드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온유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좁고 힘든 길이지만, 우리를 먼저 품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그 마음을 닮아가고자 애써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정과 공동체를 대하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 삶을 회복시키실 그분을 기대합시다. 세상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인 온유함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기업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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