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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약
주님의 평화 - 12월 22일
2024-12-28 18:25:01
전주강림교회
조회수   20

이사야 52:6-10,  누가 2:1-7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성경의 본문에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칙령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에까지 호적을 하러 먼 길을 떠났습니다. 마침내 고향 땅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그곳 여관의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았습니다. 로마 황제는 왜 호적을 하라고 명령했을까요? 로마가 식민지 국가들을 지배하는 수단은 두 가지입니다. 폭력과 세금입니다.

정치적으로 반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폭력으로 응징하며 경제적으로는 과중한 세금을 거두어들입니다. 이것이 로마제국이 식민지를 통치하는 수단입니다.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 이유는 사람의 머릿수대로 할당되는 인두세를 걷기 위한 정책입니다. 이 명령이 얼마나 준엄했던지 만삭이 된 여인이라도 머나먼 길을 가서 즉시 호적을 해야 하는 엄한 칙령이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로마로부터 가혹하게 짓눌려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호적을 하러 온 요셉과 마리아의 이야기에도 담겨 있습니다. 누가는 이 명령을 내린 사람이 바로 로마제국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라고 대담하게도 밝힘으로써 세상을 폭력적으로 지배하고, 많은 백성을 착취하는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은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황제, 그리고 이 황제가 이룬 “로마의 평화”가 얼마나 허구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해서 하나님이 보내시는 왕, 그리고 이 왕이 이루는 “주님의 평화”가 “로마의 평화”와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을 따라 먼 길을 떠나온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아기를 해산했습니다. 마구간에 태어난 예수님과 왕궁에서 태어난 왕자의 탄생은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왕궁에서 최상의 돌봄 속에서 태어나는 왕자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말의 외양간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복음은 우주를 지배하실 만왕의 왕 예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록함으로 인해서 세상의 황제에 대해서 저항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왕이란 낮고 낮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왕이 된다는 점을 예수 탄생을 통해서 선언합니다. 더 나아가서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아기 예수를 찾아와서 아기 예수를 찬미한 사람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말 밥통에 누운 아기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알고, 탄생을 축하한 사람들은 들에서 밤을 지새우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직업입니다. 종일토록 동물들의 배설물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를 맡으며 중노동을 합니다. 밤에는 사나운 동물들로부터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찬 이슬 맞으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양들을 지키는 아주 힘든 직업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세상에서 지위가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황제들, 고관대작들, 높은 지배자들은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지만 낮고 낮은 목자들은 하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수 탄생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폭력과 세금에 짓눌려 살아가는 그 땅의 한 맺힌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러 오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귀중한 존재들임을 예수 탄생을 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실존은 정치, 사회, 경제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노출된 존재입니다. 황제도, 고관대작도,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도, 평범한 백성들도 모두가 죽음의 지배 아래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주목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한 사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인류는 죽음에서 해방되었고, 죄에서 구원함을 얻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제 죽음 앞에서 떨고 있는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로의 진화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평화는 죽음을 이기는 평화입니다. 황제의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선택하고, 누리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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