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ng

 

2.png

3.png

4.png

5.png

설교 요약
분단 80년과 교회의 역할 - 8월24일
2025-08-30 17:34:52
전주강림교회
조회수   14

에스겔 37:20-28 / 누가복음 15:21-32

신약 본문의 탕자 비유에는 탕자인 둘째 아들, 성실한 큰 큰아들, 이들의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탕자의 비유는 삼각관계로 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이 비유를 아버지와 탕자인 둘째 아들의 직선적인 관계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탕자의 비유에서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요소를 놓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한 본래의 의도를 충분히 찾기 위해서 전통적인 해석을 넘어서야 합니다.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둘째 아들 탕자를 죄인과 이방인으로, 큰아들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로 생각하는 이 틀을 과감하게 깨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돌아가면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역할을 한 번씩 해 봅시다. 첫째 아들 역, 둘째 아들 역, 아버지 역할을 돌아가면서 우리가 직접 해 보자는 뜻입니다. 먼저 탕자 역은 우리 중에 누가 적격입니까? 우리 모두 한 번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한 적이 있습니다. 성실한 큰아들의 역할도 저와 여러분에게는 익숙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기득권 속에서 뭔가 보장된 미래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보장된 미래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을 때는 얼굴을 붉히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익숙합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극을 한다면 누군가가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와 여러분은 이 역할이 잘 맞지 않는다고 보여 집니다. 아버지의 성품과 역할이 실제 우리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아버지의 역할을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미룰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한 것은 큰아들, 둘째 아들의 역할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역할도 저와 여러분에게 해 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갈등이 존재하는 삼각관계에서, 갈등과 충돌을 화해와 평화로 마무리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사람들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큰아들, 둘째 아들을 넘어서서 아버지의 역할도 익숙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못난 아들을 품어주고, 모범생인 아들에게도 너희가 형제임을 잊지 말라고 충고하며, 두 아들을 화해로 이끄는 아버지의 역할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만 이 비유에서 말하려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을 올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는 분단 80주년의 우리 조국을 생각하면서 누가 남과 북의 직선적 관계에 끼어서 삼각관계를 가지고 화해를 주선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힘 있는 미국과 중국이 맡을 수 있을까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은 절대로 북한이나 남한을 위해서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가 이 사랑과 화해의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는 하나는 버리고 하나만을 선택하는 데 익숙했습니다. 남한은 절대적으로 옳고 북한은 절대적으로 악하다는 정치적 주장에 교회도 동조했습니다. 그저 62.5전쟁의 도발자라고 증오와 저주만을 퍼부었습니다. 이제는 교회만이라도 둘 중 하나를 택함이 아니고 둘 모두를 감싸안고 화해시켜서 하나로 만드는 그 소중한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만 이 민족이 상생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남한에는 북한을 위해 잔치를 벌이지 말라고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내는 큰아들과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굶어 가는 북한 동포를 위해 보내지는 쌀이 모두 군량미로 쓰이고, 핵무기가 되어 돌아온다고 어린아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볼멘 소리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설득하고 타이르고 포용해서 “저들도 우리 피붙이 아닌가?” 하고 달래고, 이해시키는 아버지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합니다. 증오와 갈등과 충돌이 높아져만 가는 남과 북의 관계에서 한 쪽을 버리고 한쪽을 편드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둘 다를 감싸안는 사랑과 화해의 아버지 역할을 교회가 충실히 해 나갈 때 교회는 이 민족을 화해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분단 80주년을 맞이한 우리 민족에게 예수 사랑 만이 갈등과 충돌을 극복하고 이 땅에 행복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교회가 이 점을 선포하고 남북 갈등을 극복하고, 동서 갈등을 중재할 수 있어야 교회입니다. 흑과 백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은 또 다른 고통과 충돌을 가져옵니다. 사랑과 화해의 역할을 죽음으로 감당하신 예수님에게서 용기와 지혜를 우리가 좀 배웁시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247 신령한 복 - 8월31일 전주강림교회 2025-09-06
246 분단 80년과 교회의 역할 - 8월24일 전주강림교회 2025-08-30
245 구원의 하나님과 8.15 해방 - 8월17일 전주강림교회 2025-08-23
244 나는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 8월10일 전주강림교회 2025-08-16
243 말씀에서 얻는 인생의 지혜 - 7월 27일 전주강림교회 2025-08-03
242 성전을 세우는 사람들 - 7월 20일 전주강림교회 2025-07-26
241 정의의 하나님이신가요? - 6월 22일 전주강림교회 2025-06-28
240 삼위일체 교리와 균형 있는 신앙 - 6월 15일 전주강림교회 2025-06-21
239 성령의 새 시대 - 6월 8일 전주강림교회 2025-06-14
238 성령의 사람 - 6월 1일 전주강림교회 2025-06-07
1 2 3 4 5 6 7 8 9 10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