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 26-27 / 마태복음 5: 38-44
오늘 말씀은 과학의 시대에도 제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근거를 준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은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만한 존귀한 존재라는 위대한 인권선언입니다. 첫 번째, 고대 세계에서는 인간을 철저히 계급과 신분에 따른 인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왕족, 귀족, 평민, 종, 노비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종, 노비도 존중받아야 할 존귀한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두 번째, 고대에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각인된 사회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힘없는 여성은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지독한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선언을 성경이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고대 사회는 철저히 가부장제 사회입니다. 왕 중심, 아버지 중심, 장자 중심의 사회입니다. 아버지, 장자로 이어지는 가계의 승계는 장손과 나머지 형제들을 엄격히 구별하는 차별 사회입니다. 성경은 첫째나 둘째나 막내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동등한 존재, 대단히 귀한 존귀한 존재라는 인간관이 기독교의 인간관입니다. 인류가 문명화되어 가면서도 지독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악독한 차별은 인종차별입니다. 서구 사람들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의 인간관을 올바르게 받아드렸다면 서구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은 근절되었을 것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백인들은 흑인들뿐만 아니라 미대륙의 원주민들도 혹독하게 차별했습니다. 자신들을 신대륙에 정착하도록 도와준 인디언들을 악마화하고, 인디언들을 학대했습니다. 이런 지독한 인종차별 문화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은 흑인들도, 미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도, 황인종들도, 백인종들도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너무도 다양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경제적 차별, 이념적 차별, 지식적 차별, 재능적 차별, 지역절 차별, 연령적 차별이 존재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존중하며 살라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저는 동정녀 탄생도 믿고, 이적도 믿고, 부활도 믿고, 천국도 믿지만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라는 가르침 하나만 가지고도 그리스도인으로 일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 말씀은 율법과 전통과 관습을 대하는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진리, 교리, 율법, 법칙에 대해서 ”정말 그런가 하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들은 말, 사람들이 모세의 가르침이라고 자신에게 전해 준 말이 무슨 뜻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세가 정한 규정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정말 그런가?” 그리고 예수님 자신의 말을 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유대 율법이나 오랜 전통에 머물지 아니하고 예수님 자신의 교훈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모세가 말했으니 무조건 그렇게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세의 규정이라도 예수님은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주장함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강조합니다. 남이 집어넣어 준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곰곰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깨우친 뜻을 말합니다. 저는 예수님에게서 질문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남이 제공한 정보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판단과 논리로 주장하는 태도와 자세를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을 때 전통적인 유대인들은 모두 예수님을 광인, 미친놈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예수님의 근거와 논리와 인격과 삶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청중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에 매몰되었습니다. 이들은 마침내 큰 공동체를 이루었고, 오늘날 기독교라는 거대한 신앙 공동체가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진리라고 말하는 원칙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를 맹종하지 아니하고 “정말 그런가”하고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짜로 얼룩진 세상에서 근본,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그런가? 이 질문은 현대인들이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태도이고, 참 나를 찾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너무도 쉽게 남의 것을 복제하는 이 카피의 시대에 예수님을 배우고 공부하고 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생 동안 예수님만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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