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신도에게 신학은 어떤 유익이 있나요?
히브리서 5:11-6:3
*** 말씀 나눔을 위한 질문 ***
1.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마18:3)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말라"(엡 4:14)는 말씀을 당신은 어떤 때,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신학의 필요성)
2. 안락사에 대해서 기독교인은 찬성해야 합니까? 반대해야 합니까? (신앙을 삶에 적용)
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삶에 적용하고 있습니까? (신학을 통한 삶의 해석)
4.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병을 경험하면서, 과학의 시대를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을까요?
* 신학의 역할
평신도가 왜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성경대로 살면 되고, 신앙대로 살면 되지, 웬 신학타령인가? 요즘은 신학을 전문으로 하는 목회자도 신학공부를 멀리하는 시대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정말 일반 신자도 신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신학의 역할’에 따라 달라진다. 신학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변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은 신학의 역할을 세 가지로 말해 보려 한다. 독자들은 이글을 읽고 신학이 필요한지에 대해 스스로 답변해 보기 바란다.
1) 성경을 통일성 있게 보게 한다.
신학은 성경의 내용을 “통일성”있게 보는 토대를 제공한다. 성경의 내용과 표현 방법은 다양하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다. 하지만 성경의 어떤 구절들은 서로 충돌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만나면 누구나 당황한다. 또 성경의 표현에는 역사적 문헌의 성격, 문학적 성경, 종교적 성격, 수사학적 성격 등이 섞여 있다. 때로는 시적인 상징과 은유를 사용한다. 성경의 어떤 구절은 쉽게 이해되지만, 어떤 구절은 겉으로 드러난 표현 뒤에 원래의 뜻이 숨어 있다.
신학적 기초가 없으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모자이크식이 된다. 성경 전체를 통일성 있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성경 각 구절의 충돌되는 부문이나, 다양한 표현 밑에 들어있는 의미를 조화롭게 볼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을 전체적이고 조화 있게 보지 못하면 많은 교리적 의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보자. 세례를 받은 후 죄를 지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가? 이혼은 어떤 경우에 허용 되는가? 죽은 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 신자들도 수도 없이 많은 교리적 질문을 가진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성경에 모두 있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신학’이 없으면 답을 찾을 수 없다. 신학의 첫 번째 역할이 여기에 있다.
2) 설교의 내용을 삶과 연결시킨다.
신학은 설교의 ‘내용’을 충실하게 만들어 주고, 설교를 삶과 ‘연결’시켜 준다. 개신교에서 예배의 중심에는 설교가 있다. 설교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설교는 제한 된 시간에 이루어질 뿐 아니라, 성경을 삶과 충분히 연결시키지 못할 때가 많다. 설교는 주로 ‘믿음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결신을 선포한다. 어떤 설교는 내용이 없으면서 ‘믿어라.’는 결신의 요청만 반복한다.
물론 상당수의 신자들은 설교를 듣고 ‘믿음대로 살겠다’는 결신에 이른다. 그러나 교회의 문을 떠나 삶으로 돌아오면, ‘믿음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들었던 설교에 내용이 없거나, 삶과 믿음을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교가 삶과 연결되지 못하면 신앙은 활기를 읽고 만다.
만약 어떤 신자가 ‘내용 없는 설교’를 지속적으로 듣게 된다면 매우 답답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 믿기로 결심을 했지, 나도 믿음대로 살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지?’
한국교회에서 내용 없는 설교로 인해 많은 교인들이 힘들어 한다. 신학은 설교의 내용을 채워주고, 설교를 삶과 연결시켜 준다. 그러므로 신학은 설교자와 설교를 듣는 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나아가 신학은 삶과 연관된 많은 문제들에 답한다. 낙태를 해도 되는가? 안락사는 어떤 경우에 허용할 수 있는가? 기독교인의 직업관은 무엇인가? 정치에 관여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지 못하면, 결국 신앙과 삶은 분리된다. 이것이 신학의 두 번째 역할이다.
3)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신학은 자신이 사는 세계를 신앙의 눈을 보게 한다. 기독교인은 모두 특정한 시대 속에서 산다. 기독교인이 세상을 떠나 구름 위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성경의 세계와 자신 속한 시대 사이에 ‘긴장’을 가진다.
각 시대는 그 문하가 주는 가치관, 세계관,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가치관이나 세계간은 인간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큰 틀이다. 누구도 그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시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성경의 가치관과 괴리가 있을 때 기독교인은 혼란에 빠진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운다. 진화론은 과학의 세계관의 일부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모르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이 시대가 주는 세계관이나 우주관으로 인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산다. 인간복제가 가능하다면, 창조신앙은 어떠해야 되는 것인가? 자녀에게 성경의 가치관과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치관 중 어느 것을 가르쳐야 하는가?
신학은 이런 주제들에 답변을 준다. 개별적인 사안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와 우리가 속한 세계 사이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신학의 세 번째 역할이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어느 시대이건 평신도가 신학적으로 탄탄할 대 교회가 건강하였다. 평신도가 신학적 토대가 없으면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다. 또 신학이 약하면 이단에 쉽게 휩쓸리면서 약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은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성경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쉽게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원리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서 쉽게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된다. 모든 신자들이 고민하는 신앙의 문제가 신학 안에 답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신자들에게는 신학이 필요하고, 신학을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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