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겔 1:3-5 / 사도행전 2:1-4
오늘 읽은 사도행전 2장 내용은 최초의 성령강림 사건 기록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성령 임재 현상을 세 가지 정도 찾아봅니다. 첫째로 성령의 역사는 공동체적입니다. 본문은 “오순절이 되어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모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유대교의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따로 모였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심을 확신합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 놀라운 신비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였다는 주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던 그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도전하고 저항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죽음도 각오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갇히는 것이 두렵고, 죽음이 겁이 나서 아직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령의 강한 역사가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모든 사람은 성령의 체험을 하고 새 마음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제자들과 신도들은 담대히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습니다. 이 체험의 현장은 함께 모여 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혼자서 성령을 경험하기보다는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 곳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혼자서 깨닫고 감사하기보다는 함께 모여서 감사하고 은혜를 되새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더 큰 주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혼자서 은혜받고 혼자서 성령 충만하고 혼자서 성숙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함께 모여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은혜받고 감사하고 기쁨을 얻습니다.
두 번째 성령의 역사는 실천적입니다. 성령임재의 현장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났다.”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 혀들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라는 기록입니다. 바람이나 불 등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 표현 방법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바람으로 그 어떤 것이 활동하는 것을 들었다면 청각이 작용했다는 표현입니다.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는 말은 시각이 작용했다는 말입니다. 이것들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는 말은 촉각이 작용했다는 말입니다. 청각과 시각과 촉각이 모두 작용해서 성령이 임재를 체험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기에 모인 사람들 모두는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겁나서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겁쟁이였던 사람들이 예수 부활을 목숨 걸고 증언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 현상을 교회는 성령강림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누가는 그 성령강림 역사를 최고의 문학적 표현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에게 전합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말씀의 사건화”, “지식의 행동화”, “믿음의 실천화”입니다.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살아냄이 신앙입니다. 예수 부활을 내 삶의 현장에서 증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세 번째 성령의 역사는 “일치성”에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성령의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언어가 달라도 서로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통하면 언어가 달라도 말이 통합니다.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언어가 같아도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자꾸 고장 나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르겠으면 옆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나하고 통합니까? 상대방이 통한다고 대답하면 분명히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좀 곤란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교회에서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 나아가서 사회에서도 통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을 받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은 말이 통하되 언어가 달라도 말이 통해서 하나 되고, 한 몸 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언어가 다른 사람끼리, 문화가 다른 사람끼리,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도 통하고 일치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몸은 비록 노쇠해져 감을 피할 수 없지만 마음은 늘 새로워져서 새 사람으로 새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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