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6-24 / 누가복음 19:38-40
오늘 구약 본문은 최초의 살인자 가인과 그의 후손들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가인이 에덴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쪽”에서 살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 가운데 라멕이라는 사람은 대단히 과격하고 폭력적입니다.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라멕의 아내들은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이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라멕은 자신을 건들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잔인한 폭력으로 복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가인이 살았던 에덴의 동쪽에서는 이런 폭력이 난무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는 가인의 자손 즉 폭력의 후예들이 존재한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폭력의 자손들은 에덴에서 살지 못하고, 에덴의 동쪽에서 살았습니다.
“왜 폭력의 후손들이 번성할 때까지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까?” 라는 질문에 성경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 폭력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산소를 공급하시고, 햇볕을 주시고, 적절한 삶의 환경을 주셨는가?” 라는 물음에도 성경은 침묵합니다. 다만,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이 땅에는 분명히 가인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의 폭력성은 더욱 조직화 되었고, 제도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들의 폭력을 묵인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성경은 ‘에덴의 동쪽’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덴은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동산입니다. 낙원을 상징합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이 존재했었던 오늘날 중동에는 에덴은 없고, 에덴의 동쪽만이 존재합니다. 이 에덴의 동쪽인 중동은 여전히 무서운 폭력이 난무하고, 무서운 무기로 집단 살상을 자행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저지르는 폭력에 대항해서 하나님이 더 큰 폭력으로 가인의 후손을 심판했다면 어땠을까? 전능의 힘으로 인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폭력과 가인의 폭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폭력에 대해 심판하는 폭력이 가혹하면 가혹 할수록 가인의 후예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더 잔인하고, 더 지능적이고, 더 과학적으로 진화됩니다. 폭력을 저지른 학생들의 이름을 학적부에 기록하고 일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겨놓는 제도의 폭력으로 과연 학교 폭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질까요? 일시적이고 순간적으로는 폭력으로 폭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 폭력을 행한 사람들에게 강한 폭력으로 복수하면 분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인의 후손들은 여전히 더 진화 된 폭력으로 세상을 위협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폭력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라멕과 같습니다. 국가 간의 폭력이 발생한 오늘날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는 에덴의 동쪽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에덴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에덴의 동쪽이라는 말은 에덴 바로 옆에 있다는 뜻입니다. 폭력의 동산 바로 옆에 에덴 동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조금만 눈을 뜨고 주변을 바라보면 평화의 동산 에덴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이 잔인한 폭력의 세상에서 연약한 평화의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평화의 사람들은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 “평화가 전쟁을 이긴다.” “선이 악을 이긴다.” 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고 폭력의 사람들도 예수의 사랑을 흉내 내려고 시도하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 올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시조인 예수님은 잔인한 폭력의 세상에서도 평화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도 가끔씩 폭력의지, 폭력성을 드러내며 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이마에 ‘맹견주의’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듯 보입니다. “조금만 내 비위에 틀리면 달려들어 물어 버릴거야!” 라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평화의 사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폭력성을 성령으로 녹여버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에덴의 동쪽이 아니라 에덴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에덴의 동쪽으로 변질된 우리 삶의 공간을 평화의 동산인 에덴으로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행복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으로 전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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