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6:10-13 / 누가복음 11:9-13
구약본문의 다니엘은 절대로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메대왕 다리우스 금령이 선포되었는데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택하겠다는 각오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기도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거룩한 연결행위이며, 주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고귀한 통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기도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간청과 간구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삶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절대자 하나님에게 형식과 논리적 절차 없이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아기는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가 어떤 형편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울어버립니다. 아기의 절박한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는 하던 일을 뒤로하고 아이에게 와서 아이의 필요를 채워줍니다. 우리가 기도를 중언부언하더라도 주님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지를 압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의 필요를 절실하게 간청하는데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간청의 기도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기도는 중보의 기도, 화해의 기도입니다. 중보의 기도는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들,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단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합니다. 어느 부모든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한평생 살다 보면 친구들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적들도 많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 나와 다투는 상대방을 향해 저주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하나님이 지켜주시길 간청하는 축복의 기도가 바로 중보의 기도, 화해의 기도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자신의 옷을 제비뽑아서 나누는 사람들을 보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고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중보의 기도, 화해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는 주의 기도입니다. 주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지길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뜻에 내 뜻을 맞추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청의 기도를 드렸던 겁니다. 하지만 간청의 기도가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하는 결론입니다.
한국교회의 뜨거운 기도의 열정 뒤에는 기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누가복음 11장 9절의 말씀은 기도하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구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면 찾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기도지상주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지를 못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구해도 주시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확히 분석해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아버지가 된 사람으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에 근거해 보면 성령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욕망을 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을 간구하는 권면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다양합니다. 혹 어떤 이들은 성령을 받은 자는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가 주어지는 것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신비와 초월의 역사가 따르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무엇이 거룩한 하나님의 뜻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의 미래가 많이 어둡습니다.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간청의 기도를 넘어서,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주의 기도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먼저 성령으로 변화되어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이 민족과 인류를 변화시키는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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