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3:7-10 / 로마서 6:6-14
우리 민족의 8.15 광복절과 동일한 사건이 성경에서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입니다. 광복절과 출애굽은 전혀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두 사건 다 하나님의 구원이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들이 고통받는 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그들이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분명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억압당하는 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짓누르는 손에서 구원하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모세는 격변의 삶을 살면서, 그가 깨달은 삶의 이치는 인간이란 그 누구도 억눌림 당하지 아니하고 존중받으며 자유롭게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억눌림 당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어떤 제도나 전통, 문화 등 그 무엇으로부터도 짓눌려 살아가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모세는 이집트 왕 바로에게 억압당하며 짓눌려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 노예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려고 다시 이집트 왕에게 돌아갑니다. 여기에서부터 출애굽이라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해방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모세가 만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교회학교에서는 구원이란 죄에서 자유를 얻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사건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구원의 정의를 종말론적인 구원, 미래적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미래적 구원을 말하면서 동시에 현재적 구원을 말하고, 종말론적 구원을 말하면서 동시에 실존적 구원도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이란 인간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서 얻게 되는 자유, 해방을 말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구원은 수직적인 계급 사회에서 맨 밑의 하층 계급인 노예들이 얻게 된 자유와 해방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한 후, 노예였던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혈통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세웁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또 다른 억압이 찾아옵니다. 바로 주변의 강대국들이 약소국인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약탈하고, 식민지로 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침략에서 벗어나려고 투쟁하고, 싸웁니다. 이 시기에는 강대국들의 억압과 침략으로부터 벗어 남을 구원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공동체적으로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람을 다양하게 얽어매고, 짓누르는 현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은 사회적으로 차별당하는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힘없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당하는 억눌림에서 해방되는 사건이 구원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한평생 살면서 당하는 보편적인 짓눌림은 경제적인 짓눌림입니다. 이런 경제적 짓눌림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성경은 구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질병의 문제 역시도 인간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질병으로부터의 치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가 또 하나의 구원입니다. 요즘같이 수명이 길어진 사회에서는 고독, 소외, 외로움 등으로부터 자유한 상태를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짓눌림에서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가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론 관점에서 보면 80년 전 우리 민족은 일제의 억압에 짓눌려 있다가 자유를 얻은 역사적인 구원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론 관점에서 1945년 8.15 해방은 우리 민족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민족 구원의 사건이 8.15 해방입니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주권을 찾은 지 8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일제가 우리 백성들에게 심어놓은 “노예근성”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습니다. 자유와 주권을 찾은 지 80년이 지났으니까요, 이제는 동족끼리의 일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고 더 넓은 자유의 나라, 더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희망이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에 짓밟혀 억눌림 당하지 말고, 남의 나라를 짓밟는 비인도적인 나라가 되어서도 안 되고 모든 이웃 나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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