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3:1-6 / 빌립보서 4:10-13
뱀이 여자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은 모든 나무에서 나는 실과를 먹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뱀은 여자를 속이기 위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합니다. 여자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였어.” 사실 만지지 말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틀어서 대답합니다. 언어를 비트는 행위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갑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짜뉴스에 속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쁜 언론인들은 독자들을 선동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방향을 끌어내기 위해서 문장을 비틀거나, 한 부분만을 따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로부터 여러분을 비난하는 말을 들었더라도 쉽게 흥분하지 마세요. 카톡에서 어떤 글 하나를 보고 부르르 떨지 마세요. 그 말과 글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뒤에 행동하는 사람이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뱀은 여자에게 죽지 않고,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된다고 유혹합니다. 여자가 뱀의 말을 듣고 그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타락하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열매를 먹기 전에도 먹고 싶은 욕망, 만지고 싶은 욕망,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좀 더 좋은 것을 먹으며 살고 싶다는 욕망,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살고 싶다는 욕망, 좀 더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런 욕망, 욕구가 우리를 더욱더 땀 흘려 일하게 합니다. 더욱더 열심히 연구하게 하고, 더 절약하며, 계획적으로 인생을 살게 합니다. 인간이 가진 식욕, 권력욕, 성욕, 명예욕, 물욕, 이러한 욕망 그것 자체를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이런 욕망, 욕구를 좋은 의미에서 자연적 욕망, 원초적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입니다.
그런데 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욕망을 활활 타오르게 부채질합니다.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욕망을 탐욕, 과욕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가진 원초적 욕망은 선물이지만, “나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탐욕은 사탄의 선물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인간과의 관계 파괴, 자연과의 관계 파괴가 발생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삶에 원동력이 되는 자연적인 욕망과 파괴를 가져오는 과도한 욕망, 탐욕 사이에서 갈등하고, 씨름하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자연적 욕망과 과도한 탐욕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만족하며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만족은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적게 내는 데 있다.”는 점을 바울은 체득했습니다. 그는 선교여행 비용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었고,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소유물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줄이면 반드시 행복을 얻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행복하고 부유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소유, 더 높은 지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얼마의 소유를 가졌든지 간에, 그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현대인들이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고 절약하고 보험 들고 연금에 가입하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들도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쁨과 행복을 소유하려면 내가 처한 형편에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훈련과 수련이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도 바울처럼 부유함에 처할 줄도 알고 가난함에 처할 줄도 아는 자족의 사람이 된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자족하는 마음과 삶도 자신의 노력과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욕망의 절제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자족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감사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갑시다. 욕망의 부추김에 놀아나지 말고, 욕망을 절제함으로 자족하는 능력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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